
배규웅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모듈러 건축 중고층화 연구단장)
배규웅 선임연구위원은 모듈러 구조시스템, 강구조 및 강구조합성, PC 복합구조 시스템, 접합부 내진성능 평가 및 개발 연구, 수요자 맞춤형 조립식 주택 기술개발 및 실증단지 구축 등의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 중이다.
모듈러 건축이란 창호, 외벽체, 내외장재, 배관, 전기배선, 주방기구 등의 자재와 부품이 포함된 박스 형태의 모듈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간단히 조립·설치하는 건축을 말한다. ‘모듈러 건축 중고층화 및 생산성 향상 기술개발’ 국토교통 R&D 과제를 총괄 연구하는 배규웅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를 만났다.

우 : 영국에서 건설 중인 44층 George Road Towers
모듈러 건축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인가요?
모듈러 건축은 공장생산 건축의 하나에 속합니다. 현장에서 짓는 기존의 건축이 아니라 공장에서 모듈을 생산해 현장에서는 조립하고, 설치하는 건축을 말합니다. 모듈러 건축하면 일반인들은 ‘조립식 주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내구성과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공장에서 제작하고 현장에서는 간단히 시공만 하기 때문에 모듈러 건축기술은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해외의 모듈러 건축 현황은 어떠한가요?
모듈러 건축은 호텔, 기숙사, 병원 등에서 수요가 가장 많습니다. 해외의 대표적인 모듈러 건축물은 2009년 영국 울버햄프턴(Wolverhampton)에 지어진 25층 기숙사가 있습니다. 호주에선 44층 규모의 La Trobe Tower가 2016년 11월 완공됐고요. 미국 뉴욕에서도 32층 민간임대주택이 모듈러 건축공법으로 준공됐고, 이 B2 프로젝트에 이어 50층짜리 B3 프로젝트도 계획 중입니다. 미국에선 10여 층짜리 임대주택을 모듈러 건축으로 많이 짓고 있습니다. 영국에선 44층 George Road Towers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반면, 일본은 2층 이하 단독주택에서 모듈러 건축이 강세를 보이는 국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사례는 어떠한가요?
우리나라에 모듈러 건축이 도입된 지는 20여 년 됩니다. 콘크리트를 타설해 아파트를 짓는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모듈러 건축은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10여 년 전부터는 군병영, 독신자 숙소를 중심으로 3층 규모의 모듈러 건축이 이뤄져 왔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국가R&D 과제로 2017년 12월, 국내 1호 모듈러 공공임대주택(30세대)을 서울시 가양동에 준공했습니다. 이어 국내 2호 모듈러 공공임대주택인 천안 두정동 실증단지(40세대)를 진행 중입니다. 천안 두정동 실증단지에는 기존 적층식 공법과 함께 주택을 서랍처럼 밀어 넣어 건설하는 ‘인필(infill)’ 공법을 적용했습니다. 두 실증단지 모두 6층 중 5층(2~6층)에 모듈러 건축공법을 적용, 우리나라 모듈러 건축 기술수준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이와 함께 포스코A&C는 모듈러 건축공법으로 평창동계올림픽 미디어 레지던스를 건설한 바 있습니다. 미디어 레지던스는 4층 3개 동, 300실 규모로 올림픽 기간 동안 기자단 숙소로 사용됐죠. 미디어 레지던스는 층수가 높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규모로 시도한 모듈러 건축이라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를 총괄하고 계신 ‘모듈러 건축 중고층화 및 생산성 향상 기술개발’ 국가R&D 과제를 소개해 주세요.
‘모듈러 건축 중고층화 및 생산성 향상 기술개발’ 국가R&D 과제에선 15층을 목표로 주택난을 겪는 전국에 공급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만들려 합니다. 모듈러 건축의 보편하고 타당한 공법으로 프로토타입을 완성해 지역 조건에 맞게 약간의 설계 변경과정을 거치면 전국 어디에라도 모듈러 건축물을 쉽게 지을 수 있도록 연구 중입니다. 1인 가구와 2인 가구를 위한 150세대 공동주택을 공급할 계획인데, 부지 공모와 시행자 공모 등을 거쳐 올해 말까지 인허가를 신청할 예정입니다. 다음 단계로 2020년 말 착공해 2021년 2분기 초 준공할 계획입니다.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후 전국에 퍼뜨리기 위한 기본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듈러 건축 중고층화 및 생산성 향상 기술개발’ 국가R&D 과제에선 모듈러 건축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모듈러 건축을 발전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건설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현장생산 방식에서 공장생산 방식으로 바뀌는 중입니다. 모듈러 건축은 창호에서부터 내외장재, 배관, 전기배선까지 한꺼번에 이뤄지기 때문에 건축자재를 생산하고 ICT가 발달한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듈러 건축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기업들이 모듈러 건축에 관심이 많아도 선뜻 투자에 뛰어들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 제도 측면
모듈러 건축을 포함한 공장생산 건축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 마련이 가장 시급합니다. 제도, 정책이 현장생산 방식 중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듈러 건축을 포함한 공장생산 건축은 설계, 제작, 시공이 하나로 묶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법상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대형시설물 등에 한해 설계와 시공을 모두 맡을 수 있는 설계·시공 일괄입찰방식이 가능합니다. 모듈러 건축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제작도 포함하는 확장형 일괄입찰방식이 필요합니다. 확장형 일괄입찰방식으로 바꿔야 설계에서 제작을 간과하거나 시공을 간과하는 경우와 같은 시행착오를 없앨 수 있습니다. 자동차회사가 자동차를 설계하고 생산해 판매하듯 모듈러 건축 업체가 설계부터 제작, 시공까지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기술 측면
기술 측면에서는 내화와 양중을 해결해야 합니다. 더 높은 모듈러 건축물을 짓기 위한 기술적인 과제 역시 제도와 연결되어 있는데요, 13층 이상 건물에서 3시간 내화성능을 갖춰야 합니다. 화재가 났을 때 3시간 동안 타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해외에 비해 기준시간이 깁니다. 이와 함께 층간소음 저감을 위해 정해진 바닥두께 기준을 충족하려면 그만큼 모듈의 무게가 무거워져 이를 들어 올리는 양중 기술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내화 피복을 하고 바닥두께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크레인으로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하니 모듈러 단위 사이즈가 해외에 비해 작습니다.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보다 모듈러 건축의 출발이 늦었지만 정부차원에서 건축 생산성 향상을 위해 모듈러 건축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제도, 정책 측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국가입니다. 싱가포르에선 40층 규모의 모듈러 건축물을 비롯해 모듈러 건축물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도와 정책 정비가 선결 과제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컨트롤타워를 조직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제도, 정책 개선 방안을 도출해내고 정비해 나가야 합니다. 이와 함께 공공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일정 부분은 모듈러 건축 의무화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해외에선 40층 이상의 모듈러 건축물이 지어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듈러 건축물을 시공하기 위해 경쟁 중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기술 수준이 뒤쳐져 있습니다. 하루빨리 제도와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해외업체가 국내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습니다. 제도, 정책 정비가 이뤄지고 모듈러 건축에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기술을 접목한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의 모듈러 건축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